원정을 떠났던 시무스 추기경이 곧 복귀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진은 평소와 다름없어 보이려는 듯 굴었지만, 은근하게 부산해진 기사단 분위기를 기민한 제나는 바로 읽을 수 있었다. 시무스 씨가 온다는 건, 「그」 또한 돌아온다는 뜻이겠지. 도서관 한구석에서 순백의 기사와 사랑받는 소녀의 이야기를 읽고 있던 제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성당으로 향했다. 로엔을 통해 부쳤던 답장에 대한 답장은, 직접 얼굴을 보고 듣게 되려나.
관계자 외엔 열리지 않는 성당의 육중한 문을 열고 구석까지 들어가면, 오르간 뒤편에 위치한 작은 방이 하나 나온다. 제나는 햇살 드는 창문 쪽엔 간이 침대를 놓았고, 그 주변으로 푹신한 베개와 담요까지 야무지게 가져다 두었다. 오후의 낮잠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업무에 대한 집중도가 상당한 건 오로지 낮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오늘은 웬일로 잠이 오지 않아 도서관에서 책을 읽은 거지만. 그것까지도 다 설계된 운명 같아서 기분이 영 찝찝했다.
「페보니우스 성당 전속 조율사」라는 건 꿈도 꾸지 않았던 약 20년 전만 해도, 제나는 몬드성의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페보니우스 기사단을 동경하는 소녀였다. 라이언 기사, 여명의 기사, 그리고 「북풍 기사」… 집 앞에 허수아비를 세워두고, 작년 생일 이웃집 어른에게 선물 받은 목검으로 무작정 때리면서, 제나는 언젠가 주어질 자신의 칭호는 무엇일지 상상하곤 했다. 고양이 기사? 그건 폼이 안 나는데. 생긴 대로 주어지는 칭호면 북풍 기사는 엄청 무섭고 차갑게 생겼을 게 분명해. 엉뚱한 생각도 종종 하면서, 제나는 굳은살이 박히도록 훈련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그를 만났다. 그는 그때 기사 선발 시험의 통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신이 그날 거기에 있던 모든 시험관을 다 쓰러뜨렸으니 당연히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할 거라고 확신에 찬 투로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모습을 보며 제나는 생각했다. 술 마셨나? 주정뱅이 아저씨들이 딱 저 정도의 톤, 저 정도의 성량으로 무용담을 늘어놓곤 하는데. 하지만 키만 컸지 아직 아저씨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뭐, 저는 아직 꼬마이니 누구에게 아저씨라고 하든 문제는 없겠지만. 그래서 그냥 바로 물었다.
아저씨 저 아세요?
그는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더 당황스러운 건 제나 쪽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친화력이 좋으면 처음 보는 애한테 한참 동안 자기 자랑을 할 수 있는 거지,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나? 하지만 알았어도 딱히 지금의 감상이 달라졌을 것 같진 않다. 무알코올 주정뱅이.
그는 화제를 돌려 선심 쓰듯 검 잡는 자세를 고쳐주었다. 그대로 허수아비를 있는 힘껏 내리쳐 보라고 했다. 그렇게 했다. 표정이 별로다. 다시 해 보라고 했다. 다시 했다. 여전히 표정이 불만족스럽다. 다시, 다시…
하늘이 어두워질 때까지 예고 없이 시작된 훈련은 계속되었다. 묵묵히 그의 지시를 따르던 제나는 문득 물었다. 이거 아동 학대 아니에요? 그는 무슨 소리냐며 허수아비를 확인해 보라고 했다. 확실히, 검흔의 모양새가 달랐다.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던 목검도 이제는 손에 안 든 듯이 편안했고.